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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Verification 대 Validation

[단상] Verification 대 Validation

용어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학문의 세계에서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논거를 확실하게 주장하기 위하여 용어를 엄밀하게 정의하여 사용하고, 때로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학자들도 학문적 교류를 위해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 애쓴다. 기술의 세계에서도 용어를 중시한다. 어떤 기술적인 문서 또는 책자에서도 본론에 앞서 거의 예외 없이 용어 정의, 약어 설명 등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용어가 해당 문서, 책자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데, 학문이든지 기술이든지, 어떤 경계를 벗어날 때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경계”라는 낱말은 “한계”, “울타리”, “구획”, “지경” 등 여러 뜻으로 쓰일 수 있다. “경계를 벗어날 때”의 “경계”의 자리에 “한계”, “울타리”, “구획”, “지경” 등을 선택한다고 해도 특별히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한계”란 끝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고, “울타리”란 물리적 형태 연상에 유리하고, “구획”이란 건축, 토지 설계 등의 표현에 유리하고, “지경”이란 큰 땅덩이의 표현에 유리하다. 유사한 뜻이므로 교환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이렇게 어감의 차이가 있듯이 특정한 학문 또는 기술 분야의 경계를 벗어난 용어의 의미는 서로 의미나 쓰임새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외국어인 경우,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학문이든지 또는 기술이든지 앞선 이론 또는 앞선 기술을 가진 외국 전문가가 새로운 개념의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 그 개념에 대응되는 마땅한 우리말이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자국어를 가진 어엿한 나라가 학문 또는 기술 용어를, 외국어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여러 이유로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글 용어를 발굴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감 또는 표현의 선호도 때문에 한 용어를 다른 용어보다 앞세우는 다툼 또한 불가피하다.

이는 대체로 번역 문제와 궤를 같이 한다. 일반적으로는, 한 저자의 책을 여러 전문가가 공동 번역하는 것보다는 한 전문가가 번역하는 것이 일관성 측면에서 그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외국 용어를 한글 용어로 바꾸는 일도 이와 유사성이 있다. 비록 최초의 선택이어서 의미를 담기에 다소 부족함이 있는 용어라도 최초 전문가의 수고를 인정하고 수용할 수만 있다면, 이후 좀 더 적합한 한글 용어가 등장할 때 일관성을 갖고 수정할 수 있겠고,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세월과 함께 깊이를 더해가는 발전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술 번역이란 얼굴 없는 번역이고, 전문가들의 용어 선호도 차이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수 용어의 동일 무대, 동시 등장은 불가피하다. 어떤 방식을 거쳤든지 간에 일단 등장한 용어를 퇴장시키는 일은 만만치 않다. 대다수의 여론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용어만을 바라보거나,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지 결과만 만들면 된다는 쪽으로 기울기 때문에 용어의 통일은 부차적이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막강한 권력이 개입하여 강제로 하나의 손을 들어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실무자들은 서로 다른 용어 또는 부적절한 용어로 혼란을 겪느니 차라리 원어 쪽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한글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한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글 용어에 대한 불신 또는 차별은 원어 의존성을 더욱 강화하게 되고, 그것은 또 다시 한글 용어와 번역의 불신으로 돌아오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한글 용어의 부실화와 한글 번역의 저질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서론이 길어졌다. 원래 용어의 선택에 주목하여 시작한 글이지만, 그렇다면 용어 선택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의미는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는지를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과 밸리데이션(validation)이라는 용어와 필자의 실수 경험을 통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과거, 필자가 품질 보증 부서에 몸담고 있었을 때는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은 “검증”, 밸리데이션(validation)은 “확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현재,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은 “검증”으로, 밸리데이션(validation)은 “유효성확인”으로 하거나, 영어 발음 그대로 “밸리데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전문 분야에서는 아마도 또 다른 한글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할 것이다.

한글 용어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과 밸리데이션(validation)이라는 영문 용어의 정의가 바뀐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은 설계/개발 수명주기의 특정 단계에서 설계/개발 출력 결과가 해당 단계의 입력 요구사항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평가 절차이고, 밸리데이션(validation)은 최종 설계/개발 결과물이 사용자 요구사항과 사용 목적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평가 절차를 말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은 제품을 올바르게 만들었는지(building the product right)를 확인하는 활동, 밸리데이션(validation)은 올바른 제품을 만들었는지(building the right product)를 확인하는 활동이라고 부연 소개되기도 한다.

필자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러한 정의에 따라 V&V(Verification and Validation)의 두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하였고, 심지어 반드시 구분하도록 강조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과거에는 사용자 요구사항 중 몇 가지 중요 규격을 택하여 확인하는 테스트 과정을 시스템 시험이요, 밸리데이션 활동이라고 인식하고 수행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그 두 용어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활동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과 밸리데이션(validation)에 동시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사실, 밸리데이션(validation)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을 대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혼란에 빠졌었다.

사실, 명확히 구분되는 적용 사례를 충분하게 많이 소개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과 밸리데이션(validation)의 정의를 실제로 이해하는 일은 실무 담당자에게는 혼동되는 일일 것이다. 정의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고, 또한 설계/개발 단계 모형을 놓고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제3자, 특별히 규제 당국의 품질 심사원에게 실제로 이 두 활동을 구분하여 자료로써 입증하는 일은 너무나 막연한 일이다. 해당 품질 심사원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과 밸리데이션(validation)의 용어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큰 문제 없겠지만, 만일 필자처럼 거기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이라면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포수 모형이든지 V자형 모형이든지 개발 모형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면(아래 그림 참조) 모든 것이 자명해진다. 사용자 요구사항(user needs)은 설계/개발의 입력 조건이고,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은 중간 단계의 입력/출력 확인이며, 밸리데이션(validation)은 최종 단계의 사용자 요구사항 확인이다. 밸리데이션(validation)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을 감싸는 구조이다. 화살표로 대응되는 관계에만 주목하기보다 전체 설계/개발 과정을 감싸고 있는 활동이 밸리데이션(validation)이고, 전체 설계/개발 과정 내에 포함되어 있는 활동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이라는 사실에 착안한다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과 밸리데이션(validation)은 포함 관계이며,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 나면 허무하지만, 왜 어떤 경우 동일한 시험처럼 보이는 것이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에 포함되기도 하고 밸리데이션(validation)에도 포함되기도 하는지, 베리피케이션(verification)처럼 보이는데 왜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밸리데이션(validation)이라고 말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바로, 밸리데이션(validation)이란,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자 요구사항의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활동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요구사항으로부터 비롯된 설계/개발 과정 전체를 포괄하는, 좀 더 큰 범위의 활동이 밸리데이션(validation) 활동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림) FDA의 설계/개발 모형

2020년 2월 11일 최종 갱신

[단상] 소아당뇨 어머니가 주는 교훈

소아당뇨 어머니가 주는 교훈

소아당뇨 환아의 어머니로서 아이를 위해 의료기기를 직접 수입/개조하였을 뿐더러 많은 환아들의 고통까지 덜어주었던 미담의 주인공 김미영씨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고발 당했다는 글을 지난 봄에 나눈 바 있다. 관세청 고발 때와 유사하게, 검찰은 식약처 고발 건에 대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우리 사회가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 어제(7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개최된 한 행사에서,
“소명이 어머니(김미영씨를 가리킴)의 이야기는 의료기기의 규제에 대해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많은 아픈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희망을 준 소명이와 소명이 어머니에게 여러분,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김미영씨 사례에 큰 공감을 표명하였고, 그와 동시에 의료기기 규제혁신을 위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약속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첫째, 첨단 의료기기가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첨단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절차를 만들어 혁신성이 인정되면 즉시 시장에 출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까 사례를 들었습니다만, 유방암 수술 후 상태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도 국내에 임상문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허가받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제 이런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둘째, 안전성이 확보된 체외진단 기기에 대해서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단계적으로는 사후평가로 전환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겠습니다. 시장 진입에 1년 이상 소요되던 것이 80일 이내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람 몸에 사용하지 않고 의사 진료 편의를 위한 기기는 식약처의 허가만 받으면 될 수 있도록 절차를 대폭 줄이겠습니다.

셋째, 어렵고 힘든 인허가 과정을 쉽게 만들겠습니다. 현재 의료기기의 허가, 신기술 평가,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서는 식약처, 보건의료연구원, 심평원에서 따로 따로 인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3가지 절차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는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씀 중 규제 관련 말씀과 안전 관련 말씀이 섞여 있기에 기대 반 그리고 우려 반이다. 예를 들어, “첨단 의료기기는 별도의 평가절차를 만들어 혁신성이 인정되면 즉시 출시하도록 한다”는 문장에서 “첨단”이나 “혁신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누가 그 기준을 만드는지, 누가 그것을 평가하는지에 따라 대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또한, “별도의 평가절차” 마련은 어쩌면 특례, 특혜일 수 있다. 힘 있는 자만이 그 특혜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한 폐해는, 만일 존재한다면, 예상컨대 무고한 국민의 몫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가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바라겠는가? 바라기는, 규제 혁신이나 개혁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확보하기 위한 정확하고 흔들림 없는 규제의 반석 위에서 정의에 합하는 방식으로만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하는 것임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미영씨 사례의  경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면 우선 신속하게 건강권과 생명권을 수호하고 후속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했어야 마땅했던 것처럼, 역으로, 국민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선한 의도로 규제를 선제적으로 개혁 또는 혁신한다고 할 때, 만일 충분히 신중하지 못하여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놓쳐 버린다면, 잠재되어 있던 사고가 실제로 발현되는 사태를 막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론] “엄마들이 뿔났다” – 소아당뇨 가족 이야기

“엄마들이 뿔났다” – 소아당뇨 가족 이야기

지난 주, 중국의 한 마을에서 마을 주민(양씨로 알려짐)이 키우던 곰과 관련한 기사가 전해졌다. 산 속에서 혼자 낑낑거리고 있던 동물 새끼를 어미 잃은 강아지로 알고 데려왔는데, 키우다보니 곰이었다는 것이다. 양씨는 보호 대상 동물인 그 곰을 가족처럼 여긴지라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신고하지 않고 살았는데 소문이 퍼져나가 당국에 적발된 것이다. 현재 그 곰은 지역 당국에 압류되어 야생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 중이라는데,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역 당국은 양씨의 사연을 고려해 법적 처벌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앞서, 한국의 서울에서는 소아당뇨 아들을 둔 김미영씨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검찰에 고발한 기사가 전해졌다. 김미영씨가 희귀병 아들을 위해 의료기기를 불법으로 수입 및 개조했다는 것이었다. 1형 당뇨의 경우, 매일 여러 차례 채혈하여 혈당을 측정하고 필요 시 인슐린을 투여하여 적정 혈당을 유지하여야 한다. 어른조차 귀찮고 불편한 이 일을 어린아이 혼자서 하도록 한다는 것은 엄마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대신 아플 수 없어 늘 안타까운 마음이었던 김미영씨는 1형 소아당뇨를 좀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백방으로 알아보았고, 그러던 중 연속혈당측정기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 업체로부터 우편으로 기기를 직접 구매하여 아이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심지어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에 전송하는 기능도 혼자 힘으로 구현하여 아이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내용을 동일한 어려움을 겪고있는 다른 소아당뇨 가족들과 공유하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사회가 마땅히 큰 상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이러한 행위가 의료기기법 제26조(일반 행위의 금지) 및 제24조(기재 및 광고의 금지 등)를 위반한 것이라며 사정 당국에 고발하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와 김미영씨를 변호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김미영씨의 경우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제품을 당사자의 자격으로 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의료기기법 위반은 아니고, 해당 제품을 동일 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들 부모에게 소개한 것은 그들만의 폐쇄형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개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 광고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당 기기에 제공되는 정보를 스마트폰 화면에 전송하도록 개조한 행위는 안전성 및 유효성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불법 제조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기기법에는 허가받지 않은 의료기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허용하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김미영씨의 경우, 의료기기법 제26조를 위반한 것은 맞다. 물론, 김미영씨는 범법 행위를 의도한 적은 없다. 그러나 선의였다는 것만으로는 범죄가 면제될 수 없다. 그런데, 김미영씨는 나름대로 해당 의료기기를 수입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다가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 불능의 일이라고 판단, 식약처에 가능한 방법을 문의한 것 같고, 식약처에서는 시험용 의료기기 수입이라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험용 의료기기 수입 제도는 수입하고자 하는 의료기기가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된 의료기기인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여 허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사전 허가 제도의 한 절차인 것이지 그것이 어떤 개인으로 하여금 자가 사용 목적으로 국내 반입을 허용하고자 마련된 제도는 아니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식약처 또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광고와 불법 개조 문제는, 김미영씨가 동일 질환을 앓고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소개한 것이므로, 변호인들의 의견대로, 의료기기법  제24조를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아울러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에서 해당 기기의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한 행위 역시 해당 기기의 사용에 따른 안전성 및 유효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또한 국내에는 그와 관련된 명확한 법적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겠다.

멸종 위기의 야생 동물을 민가에서 키우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한 이유는 해당 동물들을 자연 상태에서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또한 그 동물이 야생 동물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키우다가 야생 동물임을 알게 되었다면 법률을 위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정황상 고의성이 없고, 사실 인지 후 순순히 당국에 협조했다면, 굳이 그 사람을 처벌하여 얻는 사회적 이득이 없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곳에서도 이와 같이 당위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를 형량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접근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하물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랴.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 보건에 관한 최상위 규정이다. 식약처는 이러한 헌법 규정, 국민 건강을 보건과 관련된 위해로부터 보호하고 그에 더하여 국민 보건을 향상하고 증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기본 정신, 바로 그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국민을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등의 위해로부터 보호하고 그와 같은 사업들이 적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립된 정부 기관이고 또한 의료기기법은 그러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률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소관 업무만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아야 하는 공무원일지라도 자신이 왜 그 일을 하고 있으며, 누가 그 일을 위임하였으며, 무엇을 위하여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면서 일을 하여야 올바른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미경(공무원의 시각)으로 관찰하면 법률 위반이지만, 망원경(일반 국민의 시각)으로 관찰하면 헌법 정신 내지 헌법적 가치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면(거꾸로인 경우 – 법률 위반은 아닌데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경우 – 도 있을 수 있다), 이에 관한 법률 해석은 신중의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헌법 정신과 그 원칙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김미영씨 사례의 경우, 법률 규정에 비추어보면 국민이 법률을 위반한 사례이지만, 헌법 규정에 비추어보면, 사실상 보건 당국이 하여야 할 일을 국민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헌법까지 소환하지 않더라도, 즉 김미영씨를 처벌함으로써 우리 국민이 얻을 이익이 무엇인지, 그를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국민에게 미칠 해악이 무엇인지를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더라도 처벌이 최선책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처벌이라는 칼날을 세우기보다는 법률 규정의 미진한 부분이나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정하고, 국민 보건을 위하여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일을 먼저 살피어 정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보건 당국과 관련 공무원들에게는 헌법이 정한 국민에 대한 보호 규정, 즉 국민의 보건에 관한 국가의 보호 의무에 충실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힘 있는 특정 개인이나 단체 등의 권리 확보를 위해서는 앞장 서서 규정을 바꾸거나 법적 해석을 유리하게 해주는 경우를 이미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마땅히, 그 자신이 헌법이 정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의 국민임과 동시에 헌법을 수호하여야 하는 국민의 공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시작되는 대한민국 헌법 규정은, 이 땅의 공무원들이 항상 마음판에 각인하여야 할 최상위 업무 수칙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김미영씨 사례의 경우, 이미 통관과 관련된 관세법 문제로 한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여러 정황을 참작하여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던 사례인만큼, 의료기기법 위반 문제도 당국의 현명한 결정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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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홍익인간 재세이화 洪益人間 在世理化

<이 글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의료기기품질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의료기기정보 제75호(가을/겨울호) 책임편집자 칼럼입니다.?>

[칼럼] 홍익인간 재세이화 洪益人間 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는 환웅(桓雄)의 대표 통치 이념으로서,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 그리고 세상과 함께 이치로써 다스린다는 뜻이다(겨레의 시조 환인-환웅-단군 왕검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삼성기, 태백일사, 제왕운기 등을 참조). 바꾸어 말하면, 일부 집단만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요, 군림하지 아니하고 함께 모두 살 만한 세상으로 만든다는 뜻일 게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의료기기품질지원센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부보조금과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의 인적․물적 자원을 결합한 관․산 대응자금(matching fund) 사업으로서, 지난 17년 간, 의료기기 관리제도의 정착․발전과 대한민국 의료기기 업체들을 위한 인증․허가 정보․기술의 공유․전파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제도 도입 초기, 낯선 제도의 조기 정착과 영세한 국내 제조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매우 적절했던 협력 사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오랜 기간 대과 없이 사업을 수행하였다고 자평할 때, 그 요인은 정부가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지 않고 이미 관리제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라는 공공기관에 그 사업을 맡겼다는 점(투자 위험 회피), 아울러 사업 수행 주체를 신뢰하여 적어도 사업 내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간섭하지 않았다는 점(산업계 자율성 존중)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이는 현 시점에 보아도 탁월한 선택이었고, 지혜로운 정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관리제도의 선도국가이고, 주요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의 규모나 경쟁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성장하였다는 면에서, 정부의 보조금 중단 결정은, 사업 수행 주체로서는 아쉽지만,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결정이고, 어쩌면 다소 늦은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계가 비록 양극화 등 나라의 질병을 함께 앓고 있더라도 국가 경제 규모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산업계 스스로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선도하는 주체임을 천명하고 앞장서 나아갔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보조금사업 무대에서 한편으로는 의료기기품질지원센터가 퇴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라는 또 다른 보조금사업이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은 외견상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적 지위와 성격이 다르고, 예산 규모가 거대한 만큼 정부 정책 보조자로서의 성공적 역할과 창조적 지도력을 기대하며, 이번 호에서는 새롭게 무대에 등장한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의 올해 사업 중 규제업무(RA: Regulatory Affairs) 전문가 양성 사업을 소개하며, RA 업무 관련 활동에 주목해 본다.

정부의 RA 인력 양성 사업의 목적은 아마도 우수한 RA 인력 배출을 통해 업체의 업무 능력을 향상하고, 정부의 허가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여, 규제자와 피규제자 양쪽 모두의 상승 효과를 도모하겠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이런 사업이 과연 정부의 사업이어야 하는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업의 실질적 효용성은 논외로 하고, 정부의 대대적인 인력 양성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이 RA 전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왜 산업계 스스로가 RA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는지, 그들은 왜 정부가 우리와 같은 투자를 하지 않는지, 애초부터 정부 지원이 없었는데 RA 인력과 그 경쟁력은 왜 우리보다 풍부하고 우월한지를 진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아울러, 급작스런 정부의 예산 삭감 및 국가 온라인연구장비활용시스템(infranet)과 같은 기반시설 지원 중단이 산업계의 수요 감소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던 우리 센터의 개방시험실 운영과 같은 예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의 의료기기 관리제도를 본따르고자 노력한 지난 17년의 역사를 회고할 때, 선진 사회란, 공동체의 자원과 자산을 현명하게 사용․배분하고, 공정한 경쟁, 정당한 협력을 지향하는 정의의 사회요,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수호할 책임을 마다하지 않으며 자유와 평화를 숭상하는 사회인바, 이는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탐욕과 무관하지 않으며,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과 무관하지 않음을 역사 속에서 체험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유전자에 각인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의 결과일 것이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인명이 무시되고,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는 것도 부족하여 심지어 능멸하고, 누군가와는 공존을 거부하는 추악한 모습의 2014년을 뒤로 하며, 2015년에는 이 땅에서 진정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칼럼] 누가 이 비를 멈출 것인가? Who’ll Stop The Rain?

<이 글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의료기기품질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의료기기정보 제74호(봄/여름호) 책임편집자 칼럼입니다.>

[칼럼] 누가 이 비를 멈출 것인가? Who’ll Stop The Rain?

중학교 때 반 대표로 학년별 축구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결과는 첫 경기에서 3:1로 탈락. 상대팀이 대회에서 우승하여 창피는 면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상처로 남았다. 내가 수비하던 지역이 뚫린 탓에 축구부 소속의 상대편 스트라이커에게 두 골을 헌납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6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재난 대책 전문가들은 이 재앙이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의 전형적 예라고 하였다. 스위스 치즈 모델이란 일반 치즈와는 달리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스위스 치즈를 빗대어 사고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스위스 치즈를 여러 장 겹쳐 놓으면 구멍 위치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구멍이 노출되지 않듯이, 여러 위기 관리 장치 중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한다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모델로서 세월호의 경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총체적 부실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반이 첫 경기에서 탈락했던 그 해, 서독(통일 이전의 서부 독일)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당시 우승후보는 네덜란드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네덜란드가 전원공격․전원수비라는 낯선 형태의 전략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그것을 전술적으로 가능케 한 ‘요한 크라위프’라는 걸출한 스타 때문이었다. 비록 결승전에서,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인 서독 ‘게르트 뮐러’의 감각적 골에 무릎을 꿇었지만,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리누스 미헬스’가 완성한, 이른바 ‘토탈 사커(total soccer)’ 전략은 그 이후 압박 축구라는 형태로 현대 축구의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압박 축구가 대세가 될 무렵, 나의 어린 날의 상처도 아물었다. 축구 경기에서의 실점이 어느 한 위치를 담당한 선수만의 책임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치 겹쳐 놓은 스위스 치즈처럼 전방에서의 실책이 없는 상태에서 후방만의 잘못으로 실점하는 경우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인 것이 명백해진 이상, 우리 기성 세대는 참사 자체에 대한 즉각적 속죄와 함께 미래 세대에 대한 미필적 고의의 범죄에 대한 보상책으로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개혁에 손을 댈 때이다.

의료기기 산업도 위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대표적인 산업 분야이다. 의료기기 사고는 그 속성상 대형 재난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의료기기 사고는 다수의 대중에게 일시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개인에게 일생에 한두 번, 때로는 단 시간 내에, 때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러나 그것이 사망 또는 부상의 원인이었는지조차 모르게 은밀히 다가온다. 알기도 어렵고, 뚜렷이 드러나지도 않으며, 산발적이고, 개별적이어서 대개의 경우는 개인의 일방적 피해로 끝나고 만다. 이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그 위험이 일시적 대형 재난보다 더 위협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기기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하고 우수한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도 정밀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기기 관리제도의 지난 역사는 규제의 주체들이 선진 제도 도입 또는 규제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그러한 제도적 장치를 각자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임의로 재단하고자 욕망했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료 조직은 사회적 통제를 필요로 한다. 관료 조직은 속성상 인원과 예산의 확장을 꾀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산하기관을 만들어 또다시 확장하고, 기확보된 권한과 독점적 정보 능력을 바탕으로 이미 불필요해진 일일지라도 정당성의 논리를 조작해내어 존속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나를 포함, 의료기기 규제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조직이 조직 자체 또는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하여 불필요한 또는 하나 마나 한 규제(업무)를 신설 또는 존속시키고자 할 때, 또는 필요한 규제(업무)를 없애고자 할 때 무엇을 하였는가? 대개는 나와 같이 “옳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위에서 하는 일이니 할 수 없지, 나는 힘이 없잖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였을 것이다. 당신의 힘만으로는 법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은 바로 그러한 믿음의 결과물들이다. 분명히 우리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최선의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적어도 최악의 대한민국은 안 되게 할 수 있다.

대중음악의 한 시대를 풍미한 CCR의 노래 제목에 답하며 글을 마친다. “누가 이 비를 멈출 것인가(Who’ll stop the rain)?”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If not you, nobody will)!”

 

[시론] 아이폰용 청진기, 미국, FDA 의료기기 허가 : 갤럭시S5용 심박계, 한국, 의료기기 제외

 

[시론] 아이폰용 청진기, 미국, FDA 의료기기 허가 : 갤럭시S5용 심박계, 한국, 의료기기 제외

지난 3월, 외신은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개발한 아이폰용 디지털 청진기에 주목하였습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사는 열다섯(15) 살 고등학생인 수먼 물루무디(레이크사이드 스쿨 재학 중)가 3D 프린터로 아이폰 케이스 형태의 청진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스텟 IO(Steth IO)”라는 이름의 아이폰용 디지털 청진기입니다. 아이폰 슬롯을 케이스와 맞추고 후면에 있는 센서를 심장 부위에 대면 저주파 음향이 튜브를 통해 마이크로 연결되고, 앱으로 심음을 듣고, 보고, 기록할 수 있습니다. 물루무디는 이 제품을 가지고 스트래토사이언티픽(StratoScientific, Inc.)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였고, FDA 의료기기 품목 허가를 받았습니다.

관련기사: “15 year-old creates a 3d printed iphone case – that’s also a stethoscope

지난 3월,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 동안 의료기기로 관리해 왔던 심박수계와 맥박수계 중 운동 또는 레저 목적의 제품들은 의료기기에서 제외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현재 관련 규정(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은 예고대로 개정된 상태입니다.

지난 달에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 S5에는 심박수계가 내장되었습니다. 식약처의 관련 규정 개정 전의 기준에 의하면 갤럭시 S5는 의료기기가 틀림없었고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출시 전 관련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의료기기가 아니고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훗날, 역사는 이 사건을 산업계를 위하여 규제 기준을 변경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할 것입니다. 이것이 기술 혁신에 도움을 제공한 사례가 될지 아니면 공중보건을 위협한 사례가 될지는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 사회에 대한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기사(슬로우뉴스): “삼성 갤럭시 S5 날자 배 떨어졌다

 

[시론] 비전문적 번역이 만연한 이유

 

[시론] 비전문적 번역이 만연한 이유

앞선 글에서도 전문번역회사의 비전문성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품질관리가 잘 되는 전문번역회사도 있을 것이고, 아르바이트 번역자 중에서도 훌륭한 번역가가 있을 것입니다만, 이 글은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전문적 자료 번역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이유는, 번역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대한민국 사회의 잘못된 이해가 가장 크고, 외부에 번역을 맡기는 대부분의 필요는,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고서 등의 분량을 채우고 늘이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번역 품질에 대한 정밀한 요구사항이 없으므로 대충 빨리 번역할수록 서로에게 이익이 되므로 외국어 해득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익명의 유한(번역하는 데 시간을 낼 수 있는) 인력들을 관리하면서 영업하는 전문번역회사들이 양산되는 것이고, 번역을 단지 겉보기 학력이나 인맥을 바탕으로 ‘가외 소득’ 획득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수요는 있지만 아무도 정밀한 품질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니, 번역 결과물이 대한민국의 정보지식체계 구축이나 문화 창달에 기여하지 못한 채 아무나 참여하고 아무나 공급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 몫입니다. 왜냐하면 출판사나 발주자들은 자신들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또는 단지 어떤 활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증거로 삼기위해 요식 행위로서 번역을 하는 것뿐이니 결국 독자와 국민의 소득과 혈세, 투자자들의 투자금이 낭비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번역자, 출판사나 전문번역회사가 그에 무책임하게 호응하고 있다면, 그리하여 주어진 작업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번역자, 출판사, 전문번역회사들도 넓은 의미에서 미필적 고의의 공범자들입니다. 그 죄목은 자신들과 타인들의 인생을 허무한 일에 낭비시키며 이익을 취한 죄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던 사람일지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현재도 그런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도 그 일을 통하여 좋은 번역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진정한 전문가의 길을 걷거나, 또한 비록 전문가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을 구별함으로써 자신의 자리에서 번역물에 대한 사회문화적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훌륭한 독자로 거듭 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설혹 자신에게 이익이 오지 않더라도 그 번역물을 통하여 깨어날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날 준비가 된 번역 문화를 소망해 봅니다.

 

 

[시론] 미네소타 대학의 의료기기센터 혁신연구팀

 


[시론] 미네소타 대학의 의료기기센터 혁신연구팀

미국 미네소타주는 미국 내에서도 의공학으로 유명한 주 중의 하나이고, 산학 협력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미네소타 대학교는 의공학을 선도하는 대학입니다. 미네소타 대학교는 지난 2008년에 발족한 의료기기센터(Medical Devices Center)에서 공학인과 의료인들로 구성된 학제연구팀을 구성하여 의료기기 혁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기센터 발족 이후 지난 5년 간, 100 건의 의료기기를 발명하고, 50 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하였다고 합니다.

올해도 2014-2015년의 혁신 전담 연구원, 즉 이노베이션 펠로우(Innovation Fellow)를 모집하고 있는데, 이노베이션 펠로우의 역할은 임상적 요구를 발굴하고, 개념 모형을 구축하며, 시제품을 제작하여 시험까지 완료하는 일입니다. 대체로 15-20 건 정도의 특허 가능한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미네소타 대학교의 보건의료연구센터(이른바 아카데믹 헬스 센터) 및 의료기기 산업계와 협력하여 연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응모 자격은 공학 계열, 의학 계열, 바이오 계열 학사 학위 이상의 연구자인데, 대체로 의학자 또는 박사 학위 소지 경력자들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하고, 창의성과 혁신 능력을 갖춘 인재를 원하며, 1년 이상의 연구 및 훈련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펠로우 기간 동안 봉급 및 건강보험이 지급되며, 미네소타 대학교 내의 최고의 의공학 설비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미네소타 대학교와 산업계의 의사, 공학자, 혁신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원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양식을 작성하여 학교 고용 웹사이트에 온라인으로 신청한 후, 관련 서류를 의료기기센터로 제출하여야 하며, 세 명의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2014년은 4월 20일까지 모집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정부나 산업계가 의료기기를 위시한 보건의료 및 바이오, 생명과학이 미래의 성장동력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는 있지만, 실질적이고도 자발적 산학 및 병원 간 협력은 전무한 편이고, 주로 정부 주도의 산발적이고 일회적인, 어떻게 보면, “예산따먹기”식 협력, 연구를 위한 연구, 과제를 위한 과제가 많은 편이어서 전체적인 효율이 매우 낮고, 성과 발표 이후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의 비효율 및 예산 낭비에서 벗어나, 의료의 공공성을 지향하는 우리나라 의료계와 산업 발전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 우리나라의 산업계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협력하고, 아울러 정부나 대학에서도 어떻게든 교육만 시키면 된다는, 어떻게든 취업만 시키면 된다는 허무한 인력 양성 정책 및 방법에서 벗어나, 의료계 및 산업계 전체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샘을 발굴하고, 그 물줄기를 공급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그 방법론을 찾아 실천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칼럼] 상호 이해, 상호 협력

 

상호 이해, 상호 협력

내년(2014년)은 국제표준화기술문서를 4등급 의료기기에 우선 적용하고, 동물용 의료기기 관리제도가 새롭게 도입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 표기)가 허가한 신개발의료기기에 대해서는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비급여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허가 요건으로서 다시 제자리를 잡은 GMP, 의료기기로 관리되기 시작한 체외진단용 시약 등에서의 변화가 본격화되는 해이다.

의료기기품질지원센터는 대한민국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2014년에도 변함없이 의료기기 관리제도 및 표준(규격)과 관련된 주요 현안들에 대하여 정보 제공과 지원 활동을 실천할 예정이다. 그와 관련, 국회에서 매년 제기하고 있는 의료기기품질지원센터(이하 품질센터로 표기)와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이하 정보센터로 표기)의 업무 유사성 지적 및 통합 요구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본다.

알다시피, 의료기기 관리제도는 기본적으로 규제제도이기 때문에 제도를 측면 지원하여 국내 의료기기제조업체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기능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의 두 센터의 업무가 그 대표적인 활동들인데, 이러한 활동은 양 센터 외에도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하 조합으로 표기),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이하 협회로 표기) 등의 유관기관들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협회의 경우 조합의 일부 업무를 이어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조합과 일정 부분 업무 유사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두 기관에 대한 통합이 거론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두 기관의 조직과 재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양 센터의 경우에도 제조업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식약처 보조금 사업이라는 명목은 같지만, 품질센터는 산업기술혁신촉진법에 근거하여 지난 1998년 공공기관인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하 KTL로 표기) 내에 설치된 사업이고, 정보센터는 의료기기법에 근거하여 지난 2012년 설립된 민간단체 사업이기 때문에 설립 근거도 다르고, 단체의 성격도 다르며, 명칭은 넘겼지만(품질센터의 구 명칭이 현재 정보센터의 명칭) 이관된 업무는 없고, 보조금의 규모(2014년도 품질센터 예산은 1억 8,200만원, 정보센터 예산은 33억 4,000만원)도 다르며, 실제 업무 내용도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국회가 유사성을 지적하는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보조금이라는 재원 때문일 터인데, 국회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품질센터 사업은 식약처의 단독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품질센터 사업은 KTL이 보조금에 상응하여 재원을 투입하는 매칭 펀드 사업이고(매칭 비율은 1:1~2:1), KTL이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험인증기관의 경험을 배제하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사업인 것이다. 물론, 다른 사업주체와 품질센터 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KTL 품질센터와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보조금의 상당한 증액은 불가피할 것이다. KTL의 지난 50 여년의 경험과 인력과 시설은 단순히 화폐 단위로 환산할 수 없는 대한민국 의료기기 산업계의 자산이자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폐로 환산되는 시장적 가치만을 향한, 규격화된 경쟁과 효율이 산출한 21세기의 괴물들과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동시에, 늦었지만, 시장적 환산 가치 만능, 경쟁과 효율 만능의 폐해를 극복하고,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건강권 향유를 위하여 필요한 곳에 필요한 보건의료 혜택이 제공되도록 하기 위한 의료기기 분야의 노력도 WHO를 중심으로 작게나마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의 첫 걸음은 서로 다른 주체들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존중하고 상호 협력하는 데서 출발함을 본다.

노자 도덕경 제2장에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하나의 관념으로 확정하거나 또는 차별이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덮어버리면 없음으로부터 있음이 생성되는 조화를 놓치고, 없음과 있음의 분별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품질센터 조직과 관련, 장래의 일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품질센터는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독자 여러분을 포함한 의료기기 산업계의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하여 의료기기 관리제도상의 다른 주체들과 함께 그들과는 상이한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하며,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필요한 지원 활동을 지속할 것이다.

위 기사는 계간지 「의료기기정보」의 2013년 겨울호 칼럼으로서 여기에서 관련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 의료기기 관리는 곧 국방 관리

 

의료기기 관리는 곧 국방 관리

위키백과에 따르면, 국방이란 “국가가 국민과 국제적으로 인정된 자국의 영역을 외부 또는 내부에서 발생되는 위협으로부터 사전에 예방하고 지키며, 경우에 따라서 이들의 보존과 안정을 위하여 국가가 지닌 모든 권력과 수단을 동원하는 행위 및 제도”를 말한다. 과거, 필자는 인턴사원에게 ‘의료기기 관리는 곧 국방 관리’라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과거에도 유효하였고, 현재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이에 혹자는, 보건의료의 한 분야인 의료기기 관리 문제가 어찌하여 국방의 문제일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기 관리가 “의료기기 사용에서 발생되는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사전에 예방하고 지키며,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위하여 국가가 지닌 권한과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행위와 제도”를 말할진대 의료기기 관리가 국가방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국방 관리에는 공격적 방법, 방어적 방법, 억제적 방법이 있다. 의료기기 관리에도 굳이 비유하자면 선제적인 허가관리 방법, 방어적인 사후관리 방법, 억제적인 품질관리 방법이 있다. 이번 호는 그 중 방어적 방법에 해당하는 사후관리에 초점을 맞춰 본다. 아쉬운 점은, 연초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련 부서에 의료기기 사후관리의 현황과 전망에 대하여 꾸준히 기고를 요청하였지만, 송구스럽게도 「의료기기정보」 독자들에게 그런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96년 3월 29일, 미국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한 FDA 개혁법안 통과를 목전에 앞두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미국 국민들이 매일 아침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양치질하고, 식사하고, 약 먹고,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 국민이 이들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FDA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FDA라는 독립 기관을 무한신뢰하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필자가 문맥에 맞추어 각색).

“FDA는 다른 나라들이 (식품, 의약품, 의료기기 때문에) 재앙에 처할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그와 같은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한 우리의 강력한 방패(our strongest defense)입니다.”

관록 있는 한 상원의원의 ‘FDA의 임무가 곧 국방’이라고 천명한 이와 같은 호소는 미국 의회와 정부의 양심을 깨웠고, 허가 대기 시간과 산업계의 비용을 줄여야만 경쟁력이 제고되고 일자리가 창출된다며 FDA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고 그것의 상당 부분을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산업계의 요구는 무산되었다.

국방 이야기를 하자니 식약처 공무원 시절, 전산교육 수강 시 SQL 서버의 대가인 정원혁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에 관한 이야기로서 사실 여부는 확인 불가). 어느 최전방 철책선에서 매일 주변상황을 기록하다가 자료가 너무 많아져 데이터베이스화하였는데, 서류철 상태로 있을 때는 몰랐으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다보니 특정지역에서 주기적으로 특이동향이 파악되어 정밀 조사를 하였더니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더라는 예화였다.

부모가 아무리 잘 먹여도 유아의 크기는 몇 달만에 성인의 신장이 되지 않는다. 아기가 성인 신장까지 자라는 데에는 꾸준한 영양 공급과 함께 십여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만일 오송에 자신의 혈육을 지키듯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공무원이 하나 둘씩 자라고 있다면 언젠가 우리 입에서도 MFDS는 우리의 강력한 방패라는 말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대한민국 국민의 방패인지, 우리의 의료기기 관리제도는 국민의 생명을 방어하는 책무에 충실하게 설계되었는지, 의료기기 사후관리의 체계와 효율성은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는지를 「의료기기정보」 독자들에게 질문해 보고자 한다.

위 기사는 계간지 「의료기기정보」의 2013년 가을호 칼럼으로서 여기에서 관련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